최교진 세종 교육감, 그의 참 모습

                            김용복/ 극작가, 칼럼니스트

▲ 김용복/칼럼리스트

먼 곳에서 보면 숲은 볼 수 있어도 그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의 참 모습은 볼 수 없다고 한다. 어떤 종(種)의 나무들이 있는지, 그리고 그 나무의 참 모습은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필자가 본 최교육감의 모습도 그랬다. 그는 전교조라는 숲속에 있었기 때문에 전교조에 속한 교육자라면 무조건 경멸하던 필자는 그가 페이스 북에 올리는 글을 볼 때마다 그를 향해 강하게 비판하는 글을 써서 세종시에서 발행되는 언론에 올렸다.

서너 차례 그를 공격했을 때 그 언론사 대표로부터 여러 차례 전화가 왔다. 최 교육감을 만나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그래서 언론사 대표의 중재로 그를 만나게 되었고, 전교조라는 숲을 이루고 있는 산속에서 그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1972년 과거로 돌아가 보자. 그가 왜 전교조가 되었는가?

1972년 그해 유신이 채택됐었고 우리들은 '유신독재'라 불렀다.

그해 영국에서도 유명했던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바로 민주주의를 자랑하던 영국에서도 불평등한 법의 통과에 저항하여 평화롭게 행진하는 자치구인 '북아일랜드' 사람들에게 무차별 총알을 날렸던 날이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아래 펼쳐진 유신시절. 당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지금과 같은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나라는 없었다. 그런데 국민소득 68불밖에 되지 않는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굶어죽는 사람들이 수 없이 많았고, 기거할 집이 없어 다리 밑마다 거적을 치고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필자는 당시 4400원(쌀 세 가마정도) 봉급 받던 중학교 교사였다. 그런데도 세계정세에 어두웠다. 유신이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 욕심에 의한 독재인 줄만 알고 주말이나 일요일에는 거리로 뛰쳐나가 유신독재 타도 대열에 합류했고,김대중이나 김영삼 대통령을 존경 했으며 교단에서는 강하게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독재를 비판했다.

최교진 교육감도 그랬을 것이다. 그는 필자보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대학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유신정치의 참 의미를 모른 채 김대중, 김영삼 대열에 합류하여 앞장 서 외치다가 교도소에 갔을 것이고, 막내 여동생도 오빠를 따라 외치다가 교도소를 들락거렸을 것이며, 그 막내둥이 여동생은 그 일로인해 병을 얻어 17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떠난 17주기가 되는 날 최교육감이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부모님 아래 4남매로 태어났습니다. 저는 누나와 여동생 둘이 있는 외아들이었습니다. 넷 가운데 막내인 연진이가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벌써 17년 전 일입니다. 연진이가 59년생이어서 살아있으면 올해 회갑입니다. 음력으로 생일 되는 날, 남은 삼남매가 막내가 있는 지장암을 찾았습니다. 살아있으면 술 한 잔 나누면서 연진이의 호방한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하며 올려다 본 가을하늘이 맑고 푸르러서 서럽습니다.”

그는 늘 웃음을 띤 얼굴을 하고 어린 학생들을 대하는 교육자다. 그런데 오늘 웃는 얼굴 속에 감춰져있을 막내 여동생을 잃은 서글픈 마음을 생각할 때 소리 없이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필자를 만날 때는 늘 부인과 함께 나오는 그다. 조성환 대표가 이끄는 풍류 공연이 있을 때는 최민호 교수 내외와 함께 감상하기도 하며 나를 그렇게 편안히 대해주었다.

전교조 교육감출신인 그가 펼치는 교육정책도 이야기 안 할 수 없다. 남들이 비판적인 색안경을 끼고 보는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다.

그는 모든 아이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자 그가 필자에게 들려준 교육정책.

“한 아이 한 아이가 모두 소중합니다.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라는 말처럼 모든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부자이든 가난하든 있는 그대로 존중 받아야 합니다. 운동을 잘 하는 아이, 놀이를 잘 하는 아이, 과학에 관심이 많은 아이…. 모든 아이들은 저마다의 개성과 흥미, 소질이 있습니다. 교육은 각자 가지고 있는 것을 잘 가꾸도록 돕는 일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공부라는 한 가지 잣대로 줄 세우는 교육에 반대합니다. 1등부터 25등까지 있는 교실이 아니라, 25명이 저마다의 재능으로 1등이 있는 교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학교는 여러 색깔과 모양의 꽃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꽃밭을 이루듯 다양한 아이들이 어우러져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는 곳이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미래를 행복하게 살아갈 힘을 길러주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미래를 살아 갈 것입니다. 산업화 시대의 낡은 방법으로는 미래를 행복하게 살기 어렵습니다. 미래에 적응하는 것을 넘어 앞서서 이끌 수 있도록 지식 중심의 학력이 아니라 지성과 심성, 시민성을 두루 갖춘 자주적인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고 싶습니다. 미래를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공부는 행복을 뒤로 미루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고 싶은 공부, 하고 싶은 놀이, 하고 싶은 활동을 하면서 무엇을 할 때 자신이 행복한지 찾아가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육은 가르침에서 배움으로 중심을 옮겨야 합니다. 학생 스스로 자신이 배우고자 하는 학습의 내용과 순서를 정하고 이것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배움의 주인이 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런 자기 주도성은 결국 자신의 삶에서도 주인이 되는 힘을 길러 줍니다.“

그의 흔들림 없는 교육관은 늘 웃음 띤 얼굴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그의 교육관은 평생을 교육자로 살아온 내 가슴에도 와 닿았다. 교육자로서의 권위는 물론, 교육수장으로서의 권위도 없었다. 아이들을 만나면 웃음으로 대하고, 학부모를 만나도 웃음으로 대하는 그다.

필자가 다시 교단에 선다면 나도 그처럼 하고 싶다. 어린 학생들을 다독여주고 교사들을 대할 때 웃는 얼굴로 편안히 해주는.

염홍철 전 대전시장께서 중도일보에 “보수와 진보의 치열한 토론을 제안 한다”는 글을 올린 것을 필자가 옮겨 왔다.

“약 200년 동안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적 경쟁은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른바 민주주의 선진국에서 조차 보수와 진보의 분류가 모호해졌습니다. 따라서 보수·진보, 좌파·우파의 기계적 구분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요. -중략-

‘한국은 진정한 좌파도 우파도 아니면서 기이하게 고착된 좌우 진영 논리가 모든 정치적 아젠다를 집어 삼키며, 자신들의 진영논리로 상대방을 각각 ‘보수=부패’,

"'진보=종북'으로 단순화하며 공격하는 것입니다." 고 하였다.

옳은 지적이다.

그래서 한 마디 권해주고 싶다. 당시에는 모르고 박정희 유신 정치에 항거하여 너나 없이 힘든 싸움을 했지만 그 유신 때문에 우리 모두가 잘 살게 된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아아, 최교진 교육감이여!

필자는 앞으로 진영논리로 그대를 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대의 과거 힘든 싸움을 헛되이 여기지 않을 것이며, 막내 여동생 연진이의 죽음도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 함께 웃는 얼굴로 막내 여동생 연진이를 위로 하며 살자.

▲ 지난 9월 23일 아내가 응급실에 실려갔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내외를 세종 교육청으로 초대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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