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복 본사논설실장/예술평론가

박종학교수!

그는 평생 음악 속에서 음악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사는 한 음악인이다.

그는 일찍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음악이라는 축복된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났나보다.

충남 논산의, 그것도 채운면이라는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그 열정과 끼는 모든 사람들한테 인정을 받고 일찍이 시골 초등학교(국민학교)시절에 한 번도 피아노 위에 앉아 보지도, 피아노 레슨도 받아보지도 못한 어린 학생이 음악 시간에 선생님께서 노래를 가르치며 즉석으로 올갠 반주를 부탁하자 반주로 음악 수업을 했던 사례들은 그의 음악적 감각과 귀한 달란트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시골 교회에서 교회학교 예배 및 음악수업시간에는 반주로 봉사도 했으니 말이다.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이라는 대 도시를 가보니 그는 한없이 작은 존재임을 느꼈다 한다. 그때부터 여기저기 음악은 물론 교회학교, 교육 세미나 강좌 및 음악이라는 매체에는 미친듯이 쫓아 다녔다 한다.

음악을 좋아하니 어느 합창단에도 입단하여 물 찬 제비처럼 신나게 뛰어다녔는데 그렇게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강의를 하러 다니며 청소년들한테 진로에 관한 강의를 할 때마다 “자기가 제일 좋아하며 잘하는 일들을 찾아보라”고 하는 말을 하는데 맞는 이야기인 것 같다. 자기가 좋아하니 피곤도 없고 능률도 오른다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봉사하던 모 합창단에서 상임지휘자가 하루 공석에 생겨 그때 총무를 맡고 있었는데 지휘자께서 자기를 대신해 파트 연습이라도 시키라는 권면을 하자 그때부터 한 주 동안 가르칠 악보를 거의 암보할 정도로 준비해 가지고 가서 연습시켰는데, 연습 후에 단원들의 분위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한다.

듣기 민망할 정도로 상임지휘자보다 더 좋았다는 말부터 시작해 ...대단했다는 말로 이 사람 저 사람이 칭찬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때 연습했던 곡이 ‘구노의 장엄미사 곡’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 주 내내 구노의 장엄미사에 미쳐있었다고 했다. 어떻게 온 기회인데...내 나름 내 자신을 한번 평가받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더 거룩한 욕심을 부렸다.

모 대학 지휘과에 입학을 해 자기 자신을 한층 더 성장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부족한 부분도 발견하며 서서히 음악이라는 장르, 그것도 교회음악 지도자로, 또 합창단 지휘자로 봉사하려니 공부할 게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공부하면서 지휘 과정에 석사학위까지 마치게 되었다.

박교수는 행복하게도 KAIST의 좋은 직장을 1980.1.9.일 입사하여 2016.12.31.년까지 36년 동안 세계적 석학들이 모여 학습하며 연구하는 이공계 특수 대학원 교육기관에서 근무했다.

그 덕에 세계적 문화예술의 스타와 단체들을 손쉽게 만날 수 있었고, 대표적 세계적 피아니스트 백건우 선생님, 세계적 지휘자 금난새, 성악가 최현수, 대전시립교향악단은 물론 대전 시립합창단, 그리고 그 밖의 많은 합창단, 뮤지컬 단체, 대강당 1,111석의 1,2층을 가득 메워 많은 청중들이 되 돌아갔던 국립발레단의 지휘자와 단원들...이루 말할 수 없는 세계적 뮤지션들을 만나게 되었던 것은 박교수에게는 잊을 수 없는 값비싼 추억과 학습의 시간들이었다고 했다.

이로 인해 몇 가지의 학습과정의 도전으로 경영학, 지휘 과정, 사회복지, 신학 과정, 산업대학원, 음악 치료학 등 다양한 교육과정들을 접하게 되었고, 지금은 KAIST 정년 이후에 학습되었던 것들의 연결로 (사)한국청소년 인성교육협회 내에 21C교육 포럼에서 부회장으로 교육 및 홍보부문에서 섬기며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또, 대전에 서 30여 년 동안 유지해온 ‘한소리 음악회 동호회’에서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해설이 있는 음악 강좌에서 박교수가 이해하기 쉬운 해설 음악회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월 그달의 맛깔스런 토픽을 정해 재미있고 유익한 강좌를 진행하는데, 예를 들어 5월의 가정의 달에는 사랑의 음악 테마로 부모님, 선생님, 부부중심의 음악들을 선발하여 음악을 보고 들으며, 마지막에는 합창을 함께 해보는 음악회를 개최하고, 6월은 호국 보훈의 달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음악을 작곡한 민족 음악가들을 찾아 그 나라의 아름다운 정경들과 그 속에 담겨있는 역사적 문화와 예술들의 가치를 함께 보고 듣는 음악회를 개최했는데, 예를 들어 모차르트의 레퀴엠,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몰다우, 체코의 드볼작 신세계 교향곡, 아메리카, 노르웨이의 그리그 페르퀸트 모음곡 중, 솔베이그의 노래,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 등을 지휘했다.

최근 더 클라츠라는 소규모 음악단체를 섬길수 있어서 감사하며 음악 동역자로서 감히 자랑하고 싶다고 하며 이 단체를 소개했는데 이 단체는 클라식과 퓨전, 영화음악 OST, 대중음악, 팝송 등 다양한 장르들을 소화해내는 단체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대전 통키타 동호회에 들어가 키타를 배우며 재미있게 활동하고 있고, 특히 지휘를 하려면 합창단 목소리의 성악도 중요하지만 때론, 기악과 협연을 하게 되면 악기의 특성 및 역할들도 알고 있어야 한다고 하여, 그 나름대로 피아노, 첼로, 클라리넷, 색소폰, 신디사이저 등 다양한 악기들을 배우고 있고 박교수가 다 못하는 악기들은 가족들을 통해 간접적 경험을 쌓았다고 한다.

박교수의 아내는 플릇을, 딸은 피아노를 전공했으며, 아들은 바이올린을 어릴 때부터 교육시켜 대전의 모 오케스트라에서 한동안 연주활동을 계속 했으니 가족의 도움을 받을만도 하고 그래서 박교수 가족을 아는 음악가들은 박교수 가족을 음악가족이라 부르기도 한다.

왜아니 그러겠는가? 그 가족들은 믿음의 가족으로 교회 내에서도 자기가 공부한 악기들을 통해 다양하게 찬양대에서 봉사하고 있고 박교수는 교회의 찬양대 지휘자로 약 30년 이상 봉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가 무대에서 지휘한 경험도 서울에서는 세종문화회관, 호암아트홀, 서울 서초동의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 여의도 KBS홀, 류관순 기념관, 단국대 홀, 한남동 의 횃불선교센타 사랑성전, 국립극장 등이 있고, 대전에서는 대전예술의 전당, 우송예술회관, CMB엑스포 아트홀, 충남대 정심화 홀, 시민회관, 혜천대 대강당, 등 크고 작은 무대에서 다양한 공연 및 연주(지휘)를 하였다.

이러한 공연 및 지휘를 하는 과정에 지휘자로서 때론 연주자로서 많은 생각과 고민 숙제로 밤 잠을 설치며 준비하고 실연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음악적 생각이나 음악적 완성도는 점점 무르 익어가는 것 갔다.

그러니 박교수여!

주님께서 주신 건강이 허락하는 그 시간까지 하나님을 위해, 음악인 후배들을 위해 계속 갈 길을 가기 바란다.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셨다.

▲ 박종학교수의 지휘하는 모습

⯈박종학교수 학력

⬝한국방송통신대학 경영학과 졸업 (경영학과, 경영학사)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졸업(교회음악)

⬝미국 Washington College & International Seminary 졸업

⬝M.C.M(합창지휘 석사)

⬝기독음대 지휘과 졸업(지휘과)

⬝미국 Westminster Choir College, Choral Conducting 연수(합창지휘)

⬝경희대 사이버대학교 졸업(사회복지사 2급)

⯈박종학교수 주요 경력

⬝대전 극동방송국 성가합창제 출연 지휘(4, 8, 12, 15회) 우송 예술회관.

⬝충대 정심화 홀, CMB엑스포 아트홀. 대전합창제 출연 지휘(26, 29회).

⬝ 한남대 학제신학대학원 코이노니아 선교합창단 지휘자 역임.

⬝한국교회음악협회 대전 지회장, 기독음대 지휘과 교수, 전 KAIST 근무. (사)한국청소년인성 교육협회.

⬝21C교육 포럼 부회장. 대전 시립 합창단(사) 하모니 이사, 칸타빌레 음악회 이사, 갤러리 봄 (BOHM) 이사.

⬝대전문화재단 대전마을합창단 시민문화 서포터즈 전문가 위원 역임. 한소리음악회 음악 강좌 강사.

⬝KAIST Singers 지휘자 역임, 대전하모니 싱어즈 지휘자 역임, 그라베남성콰이어 지휘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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