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타인이다

등은 소파에 묻고 한 손엔 스마트폰

▲ 은재 장지연 시인

쉼 없이 영상을 더듬는 눈

감동 스토리를 연이어 보아도 안구는 건조하다

홀로 쫓기는 시간을 탓하며

침묵하는 너는 내가 아니다

나였던 적이 있었는가

세뇌당한 판단은 미디어의 노예가 되었고

단*짠에 길들여진 미각은

배달의 민족 후예가 되어 가고

흘려 쓰던 악필은 함초롱 바탕체가 되었다

나는 내가 아니고 너도 내가 아니다

타인의 타인이 내 거죽을 쓰고

나를 몰아내고 주인이 된 지 오래

이 시간쯤에서 그만

생텍쥐페리의 별에 홀로 핀 장미를 보러 가야겠다

♣ 詩作 노트_________

나는 타인이다

길들여 진다는 것은 눈물을 흘릴 준비를 하는 것이라 했던가? 셀룰러폰은 말 그대로 돌연변이 세포가 되어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의 감각을 둔화시키기 시작했다.

둘이 마주 앉아 커피가 식어가도 핸드폰과 스킨십하고, 음성통화보다 카톡으로 알림 하는 문자가 더 익숙한 시대가 되었다.

보이스피싱이 성행하는 것을 보면 알겠지만, 누구든 나인 척, 너인 척 소통하고 속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스스로 나를 돌이켜 보아도 이게 진정 나인지 구분해 낼 자신이 없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SNS에 포스팅 된 음식이 어떤 맛이든, 나이를 지우고 올린 프로필 사진속 주인공이 누구이든, 악의로, 또는 선의로 다는 댓글들의 속마음이 무엇인지,

내가 소통하는 모든 것들이 실존하는 것들인지, 집안에서도 고립된 외계의 튜브 안에 갇혀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순간 반문해 본다

거울 앞에서

넌 누구냐?

올드보이의 최민식이 거울 속에서 씨익 웃는 듯하다.

넌 누구냐?

히메로스의 미소가 아프로디테의 등 뒤에서 히죽거리는 것 같다. 정체성을 잃고, 스마트폰 속의 스마트한 세상에 갇혀 전혀 스마트하지 않은 시간을 허비하며, 혹시 당신도 그렇게 타인의 자아 속에 갇히고 있지는 않은가? 문득 내 안에 내가 아닌 타인의 호흡이 느껴져

몇 자 끄적이면서 내가 거울이 되어 본다.

*히메로스: 통제되지 않는 갈망

아프로디테를 모시는 욕망의 신

*아프로디테: 달의 여신, 미의 여신

하늘을 나는 것은 새와 비행기 뿐이 아니다. 인간이 맘만 먹으면 무엇이든 공중을 날게 할 수 있다. 문자도 공중을 날고 음악과 사진까지도 공중을 날아 내 손아귀 폰에 들어오는 쇼설미디어시대다.

장지연 시인의 “나는 타인이다‘는 현대 문명의 이기에 빠져 ’내가 아닌 내가 된‘쇼설미디어의 노예- 현대인 의 특징을 섬뜩하게 묘사하고 있다.

시를 ’詩作노트‘라는 제목을 달아 수필형식을 취해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것도 장 시인만이 가지고 있는 창작기법인 것이다.

이미 sns에 길들여져 노예가 된 나도 이쯤에서 생텍쥐페리의 별에 홀로 핀 꽃 한 송이를 보러 떠나야 할 것 같다고 표현하고, 올드보이의 최민식이 거울 속에서 씨익웃는 듯 하다고 표현한 것, 그리고 히메로스의 미소가 아프로디테의 등 뒤에서 히죽거리는 것 같다고 표현한 것은 장 시인의 놀라운 독서력에서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시의 마지막 행, ’생텍쥐페리의 별에 홀로 핀 장미를 보러 가야겠다‘는 돈강법을 사용해 마무리한 것은 뛰어난 감정조절의 표현이라 아니 할 수가 없다.

장지연 시인, 앞으로 기대되는 시인이다.

극작가, 평론가/ 김용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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