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어느 날, 일찌감치 새벽시장을 나가는 엄마가 잠을 뒤척이던 어린 나를 깨우자 엄마 품을 놓칠까 봐, 이내 담요를 걷어차고 일어나 눈꺼풀에 어설픈 겨울눈 다녀가듯 새벽길을 따라나섰다.

정각 네 시를 앞둔 십 분 전처럼 어김없이 3900원짜리 선짓국에 엄마는 두둑한 사랑을 내어주었다. 구멍구멍 숨 쉬는 어린 벙어리장갑을 낀 채, 시래기 냄새 풀풀 익어가는 가마솥 옆에서 차가워진 손을 비비던 시장기는 늘 부족한 잠을 채우기 위한 발 빠른 해장이었다.<이종근 시인>

  선짓국이 뜨겁다

                   이종근/시인

▲ 이종근 시인

밥 한술에

갓 담은 깍두기 김치 한 점

도톰한 입술이 행복하고

 

내복에 감춰둔 배 속이 든든하다.

엄마가 멀리 황혼처럼 떠나고

엄마가 삼시 세끼처럼 그리운 날,

엄마가 내어준

맛을 고스란히 빼닮은 듯

겨울눈 다녀가는 그 시절 그 새벽시장에서

늙은 수저를 노포(老舖)처럼 받아 쥔다.

이 멀건 선짓국이

눈발 날리듯 자꾸 흐려지는데

사내의 허기를 메꾸는 선짓국 한 그릇에

그렁그렁 목이 잠기면

하늘 엄마가 한참 애를 태우듯 지켜보다가

어느새 엄마는

선짓국 값을 치르고 스러진다.

 

<작가소개>

부산 출생,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한국문인협회 시창작과정(2년) 수료.

계간『미네르바』등단,『서귀포문학작품공모전』,『박종철문학상』,『부마민주항쟁문학창작공모전』,『빛고을문예백일장』,『국립임실호국원나라사랑시공모전』등에서 다수 수상, 그리고 계간『문예바다(2020년,겨울호)』기성작가원고공모제에 선정. 아울러《5·18광주민주화운동40주년기념시집(광주문협시분과)》,《부마민주항쟁의재조명과문학작품(경남작가,통권제37호)》,《부산김민부문학제》,《대구10월문학제(대구경북작가회의)》등의 기념문집에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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