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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의 삶과 음악

기사승인 2020.07.10  09: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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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회/ 전 가톨릭대학교 부총장 경영학교수

차이코프스키의 삶과 음악  

▲ 김석회/ 카톨릭대학교 전 부총장

독일에 베토벤이 있다면, 러시아에는 차이코프스키가 있다. 클래식을 즐겨듣는 사람들에게는 이들 두 악성이야말로 하늘과도 같은 존재들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 밖에도 수많은 작곡가들이 존재하지만 이들을 주제로 삼는 것은 이 두 사람이 모두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곡들을 작곡했기 때문이며 또 한편으로는 두 사람 모두 신체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곡들을 작곡했기 때문이다.

베토벤이 귀머거리였다면, 차이코프스키는 동성애자에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했었다. 어려서부터 클래식을 즐겨 들어왔던 나로서도 이들 두 작곡가를 무한히도 좋아했고, 그래서 오늘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들으며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차이코프스키는 음악에 대한 별다른 애정이 없었던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법학을 전공하고 법무성에서 한동안 일한 바 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소질을 가지고 있던 그로서는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음악과 관리(官吏)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는 독일 프랑스 영국에 여행을 하면서 1861년 음악교실에 들어가서 자레바에게 음악이론을 배운 다음에 관현악곡 인 '폭풍후'라든지 칸타타인 '환희에 부쳐' 등을 작곡한 바 있으나 별다른 호응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중 1866년 루빈스타인이 설립한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 부임하게 된 그는 '교향곡1번' '겨울날의 환상'을 작곡함으로써 일약 유명하게 되어, 1870년 '로미오와 쥴리에트', 1871년 '현악 4중주곡 1번', 1872년 '교향곡 제2번', 1873년 섹스피어에 의한 환상곡 '템페스트' 등을 작곡함으로써 세기적인 작곡가로서 주목을 끌게 되었다.

그러나, 그를 세계적인 작곡가로 등장하게 한 곡은 1874년에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제 1번'이었다. 이 곡은 한번 듣게 되면 또다시 듣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곡이다. 음악 애호가들의 무한한 사랑을 받는 차이코프스키, 모차르트,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들의 공통점은 바로 작곡가 자신이 직접 연주하기 위하여 작곡된 협주곡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서양 음악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뛰어난 연주가였으면서 동시에 천재 작곡가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무렵 차이코프스키에게는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될 일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것은 모스크바 음악원의 제자였던 28세 밀류코바의 끈질긴 구애로 37세에 결혼을 하게 된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여인이 음악에 대한 이해도 관심도 전혀 없어서 결국은 그녀와 헤어지는 마음의 상처를 입게되고, 그로인해서 그는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이른 아픔을 겪었다.

그리하여 신경쇠약으로 고통을 받던 그는 스위스 여행을 하게 되었고, 거기에서 일생에 단 한 번 밖에 만나지 않고 플라토닉한 연애를 즐겼던 부자 미망인 ‘폰 메크’를 만나게 됨으로써 작곡가로써 제 2의 인생을 다시 살게 되었다.

그 후 ‘폰 메크’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은 그는 그녀의 따뜻한 보살핌에 '교향곡4번',오페라 '에프게니오네긴', '바이올린 협주곡' 등 유명한 곡들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출중한 곡은 자신의 동생과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이탈리아의 문화와 예술에 자극을 받고 작곡한 '이탈리아 카프리치오'인데, 그 곡이야말로 듣는 이들로 하여금 찬탄을 자아내게 하는 곡이다. 그래서 나 자신도 그의 '피아노 협주곡'과함께 그 곡에 취하게 된다.

거기에 1893년에 작곡한 그 인생의 마지막 곡이 된 비창 이야말로 그의 예술혼을 그대로 드러낸 곡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차이코프시키는 코로나19가 아닌 콜레라로 사망했다 한다. 의도적으로 맹물을 마신다음 콜레라를 마셨던 것이다. 그는 맹물을 마시기전에 옆에 있던 친구에게 "내가 죽고 나면 마지막으로 작곡한 교향곡 6번(비창)은 세계최고의 위작으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그 당시에 러시아에는 콜레라전염병이 전국적으로 퍼져있을 시기이라 끓여 먹어야 할 수돗물을 그냥 맹물로 마시며 9일 만에 사망한 것이다. 그때 나이 53세였다.

각 악장마다 인생의 의미를 담아냈다고 할 수 있는 '교향곡 4번'인 그의 ‘운명교향곡’을 비롯해 수많은 곡들에서 나타나는 숙명적인 어두운 그림자와 감상적인 감미로움, 인간의 죽음 그리고 절망과 우울 등은 듣는 이의 마음을 크게 흔들어 놓곤 한다. 뿐만 아니라, 폭풍이 휘몰아치듯 듣는 이로 하여금 숨 막히게 하는 흥분을 자아내기도 하고 또 때로는 폭풍이 지나간 뒤의 평온함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삶의 허무와 환상을 마음속에 그리게 하면서도, 화려함과 침통을 곁들임으로써 듣는 이로 하여금 애절함과 비통 그리고 슬픈 탄식마저 느끼게 하는 그의 곡 들은 영원토록 우리들의 가슴속에 아로새겨 질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명언중의 명언을 세세만년에 남기고 있는 것이다.

김용복 논설실장 kyb1105@hanmail.net

<저작권자 © 미래세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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